작성자 광성사
작성일 2010-01-30 (토) 20:51
ㆍ조회: 4640    
기초수행의 필요성
〈기초수행의 필요성〉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초수행으로부터 순서대로 닦아야한다. 우선 복덕을 쌓고, 업장을 소멸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덕을 쌓는 것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는 것과 중생을 의지해서 복덕을 쌓는 것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삼보에 귀의하고 공양 올리는 것, 삼보의 공덕을 기억하고 그 가르침의 핵심인 인과를 실천하는 것등
둘째, 중생을 위해 자애심과 연민심을 관상하는 것, 어려운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중생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계율을 지키는 것, 중생을 의지해서 인욕을 실천 하는 것 등을 주로 말한다.


만약 복덕이 없으면 물기가 없는 씨앗과도 같아 싹을 틔울 수 없으니, 마땅히 복덕을 쌓고 업장을 소멸하게 하는 아래의 내용들을 실천해야 한다.


절하기
절은 신・구・의에 의지해서 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몸으로 절을 할때 많은 몸을 관상하여 그 하나하나에 무량한 머리가 있음을 관상한다. 그렇게 관상하기가 힘들면, 전생에서 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태어난 것을 인간의 몸으로 생각하여 수많은 몸을 관상해도 된다.
절을 올려야 하는 대상인 부처님들도 수없이 관상한다.
원래 절하는 방법으로는 그저 손을 들어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반절과 오체투지의 방법이 있다. 오체투지는 온 몸을 땅에 대고 하는 절을 말한다. 오체투지의 근원은 ‘대장경’ 안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 ‘노르상’이라는 수행자가 부처님 뵙기를 무척 바라던 어느 날, 먼 곳으로부터 부처님을 뵙자 자신의 몸이 먼지로 뒤덮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나무를 베면 땅에 쓰러지듯, 오체투지를 하면서 부처님께 다가갔다.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노르상’의 신심 깊은 절을 무척 좋아하셨고, 그러한 절의 형태가 지금까지 티벳에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절을 올릴 때에 합장의 경우 두 손을 모두 딱 붙이는 것은 외도들이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지 말고, 엄지손가락을 두 손바닥 안으로 넣어서 여의주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마주한 두손을 정수리 위에 올리고 이마에 댄 후 목과 가슴에 차례대로 대는 이유는, 부처님의 삼십이상 중에서 살상투, 백호,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마음이 각각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때 신?구?의로 쌓은 업장을 소멸시키는 것을 같이 관상하여도 된다.
손을 바닥에 댈 때는, 손가락을 접지 말고 반듯하게 펴야 한다. 만약 손가락을 접으면 손이나 발 마디가 접혀진 발을 가진 소나 말 등으로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 손가락을 반듯하게 펴서 절을 하면 삼십이상 중에서 손가락 사이마다 비단과 같은 물갈퀴가 생기는 원인이 된다. 이런 방법으로 손과 이마를 땅에 댄다.
다시 일어서는 것은 이 사바세계에서 빨리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으니 달리는 여우처럼 빨리 일어나야 한다. 빨리 일어나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엎드려 있으면, 가슴을 땅에 대고 다니는 뱀과 같은 동물로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 또 똑바로 일어서지 않고 구부려서 대충 일어나면서 절을 올리면, 낙타처럼 등이 구부러진 동물로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
절을 올리는 것은 공덕을 쌓는 것이기 때문에 법에 맞고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숫자를 세기 위해서나 빨리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다. 티벳에서는 기초수행으로 십만 배 절을 하는 수행이 있는데 숫자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기초가 닦이지 않은 상태에서 공덕을 쌓기 위한 방편이니, 십만 번을 한 후에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수행으로 꼽힌다.
예전에 네 사람이 오체투지로 십만 배를 했는데 세 명이 다른 한 사람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 물어보자,
“너희들은 숫자를 세는 것이 더 중요하냐?”하고 나머지 한 사람이 답했다. 이는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게다가 많이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숫자를 세는 것은 수희하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유 있고 시간이 있을 때에 자주 절하는 것이 좋고, 그저 길을 갈 때에도 불상이나 탑을 보고서 절을 올리는 마음으로 합장을 한다면 이 또한 절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실천하는 방법을 안다면 자신의 모든 움직임이 절 수행과 같다.

공양물 올리기
적어도 다음 생까지 생각하는 마음동기도 갖지 않고 공양을 올리면 이는 걸림 없이 수행하기 위한 복덕을 쌓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양물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향이나 꽃?초?공양수?과일?떡 등 물질적인 것을 올리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배워서 충분히 실천하여 남에게도 가르치며 봉사하는 모든 비물질적인 행위 그 자체를 말하며, 나아가 자기 마음으로 이 우주의 좋은 것이나 귀한 것을 만들어 올리는 것 또한 거룩한 공양물이 된다.
물질적인 공양물을 올릴 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나 명예 등으로 상을 내어 한다면, 이는 공양물을 올려서 오히려 망치는 일이니 올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 불보살님께 올리는 최고의 공양물은 십계 등의 모든 계율을 잘 지키는 일인데, 계율을 잘 지키지 못하면서 공양물만 가득 올린다면, 불보살님께서는 재물을 탐내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기뻐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다.


회향(廻向)1)
하기
수행을 시작하기 전의 마음동기와 끝으로 회향함, 이 두 가지는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된다. 회향은 쌓은 공덕이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일체 중생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수행을 하거나 공덕을 쌓고 봉사하면서 기도 관상하는 것들이 크게 진전이 있고 없는 것도 회향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
화내는 마음으로 공덕을 태우지 않게 하는 방법은 ‘대장경’에는, ‘물 한 방울 바다에 떨어뜨리면 바닷물이 다 마를 때까지 그 물 한 방울이 남아 있다.’하고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이타심으로 일체 중생이 바른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 일체 중생들에게 보리심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일체 중생이 사바세계에서 벗어나게 하도록 회향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일체 중생들이 바른 스승을 만날 때까지 일체 중생들에게 보리심이 일어날 때까지 일체 중생이 사바세계에서 벗어날 때까지 우리가 쌓은 공덕이 남아 있게 된다. 이와 같이 타인을 위해서 회향해야 한다.


이렇게 위에서 설명한 대로 칠지(七支)공양을 행한다면, 절을 올림으로써 교만이 없어지고, 공양물을 올림으로써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참회함으로써 삼독(三毒)을 없애고, 회향함으로써 화내는 마음의 치료제로 삼아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업장 소멸하기

우리가 마음에 깨우침이나 공덕이 생기지 않고, 비록 생기더라도 사그라 들게 되는 것은 모두가 업장 때문이며, 이번 생에 나쁜 일들이 생기는 것 또한 과거의 생과 금생을 살면서 지은 죄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은 죄를 참회해야만 하는데 참회를 하게 되면 크나큰 죄도 소멸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큰 죄를 지어도 그 과보가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은 작은 죄를 지어도 그 과보가 무겁다고 하는 것은 바로 참회할 줄을 알고 모르는 데에 원인이 있다.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참회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죄를 짓는지와 그 과보에 대한 관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일어나서부터 잠잘 때까지, 마음과 말 등으로 남을 화내게 하고 교만을 부리거나 욕을 하는 등과 같은 죄를 짓고 있으며, 죄 짓는 과정도 알 수가 있다.
죄가 있다고 해서, 겁만 낸다면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우리는 죽기 전에 절을 하고 ‘참회보살’인 금강살타(金剛薩?), 이 진언을 외우며 자신을 정화시키는 등의, 끝없는 윤회 속에서 지은 죄업이 다 소멸되었다는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참회 정진해야 한다.
원래 죄는 장점을 갖고 있지 않지만, 참회하면 소멸되는 것이 죄의 장점이라고 한다. 참회하여 소멸되지 않는 죄는 없다. 얼마나 소멸되는지는 참회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간절하며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렸다. 그러므로 후회하는 마음을 간절하게 가져야 한다.

참회하는 공덕은 화냄을 사그라들게 하는 것과, 그 죄가 소멸되는 두 가지의 큰 이득이 있다. 그러므로 참회하기 위해서는 치료의 힘을 지닌 네 가지 대치력(對治力)을 길러야 한다.  


첫째, ‘참회할 대상의 힘’이다. 이는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대상은 부처님과 중생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참회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자기가 쌓아온 죄를 알고 진절머리 치면서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으로, 이런 마음이 생기면 다음에 죄를 다시 짓지 않겠다는 마음도 저절로 생긴다.

셋째,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참회하는 이득을 알고서,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해야 한다.


넷째, ‘치료제가 되는 행을 하는 힘’이다. 이것은 주로 여섯 가지를 든다. 전에 죄를 지은 것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완전하게 소멸되게 하는 방법인데, 여래의 명호를 부르거나, 진언을 외우고, 경을 읽으며, 공성에 대한 견해를 가지는 것과, 공양물을 올리며, 불상 등 불사하는 것들을 말한다.


이러한 기초수행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복덕을 쌓고 업장을 소멸시켜야 큰 장애 없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경지에 보다 싶게 도달할 수 있다.


 
이름아이콘 천음성
2013-05-30 11:42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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