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불교의 장점 (동대신문 경주판)
동대신문 경주판(2010년 3월 16일 발간) <보리수 칼럼>
티벳불교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써달라는 편집자의 부탁으로 쓴 글입니다.
불교학과 교수 / 티벳장경연구소장 김성철
해인사에 소장된 고려대장경에서 보듯이 불전(佛典)의 양은 다른 종교 성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동서양의 고전에 두루 밝으셨던 탄허 스님께서는 불교와 유교와 기독교와 도교의 성전을 비교하시면서 기독교의 성경책은 3개월 정도 숙독하면 모두 통달할 수 있고, 논어 맹자 등 유교 경전은 3년 정도, 도교의 도장경은 30년 정도 공부하면 통달하는데, 불경을 모두 숙독하려면 300년 걸린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불교학자라고 하더라도 현존하는 불경을 모두 독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교를 신행하려고 할 때 우선 밑도 끝도 없는 불전의 방대한 분량에 주눅이 든다.
그런데 티벳불교의 장점은 이렇게 방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단계화하여 잘 정리해 놓았다는 데 있다. 이를 보리도차제(菩提道次第)라고 부른다.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에 순서를 매겨놓았다.”는 뜻이다. 보리도차제에서는 불교 수행을 세 단계로 구분하는데 각 단계를 구분하는 기준은 ‘윤회’를 대하는 수행자의 태도에 있다. 첫 단계의 수행에서는 윤회 속에서 보다 행복하게 살고 보다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수행한다. 항상 남을 도우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사는 것이 그 방법이다. 초보적인 수행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하사도(下士道)’라고 부른다. 하사도의 수행이 무르익으면 그 다음 단계인 중사도(中士道)의 수행에 들어간다. 중사도 수행의 목표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사도 수행을 잘 해서 좋은 곳에 태어나도 나중에 그 복덕이 소진되면 다시 나쁜 세계로 떨어지기 때문에 ‘좋은 곳에 태어나는 것’보다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자각이 중사도 수행의 추동력이다. ‘계(윤리), 정(집중), 혜(지혜)’라는 전문 수행을 통해 탐욕, 분노, 어리석음과 같은 번뇌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 세상에 대해 맺힌 한(恨)이 다 풀렸기 때문이다. 해탈한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 수행이다. 이른바 소승이다. 이를 자각할 때 수행자는 이타심을 크게 발하여 일부러 윤회 속으로 들어온다. 항상 남을 도우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보살의 삶을 사는 것이다. 대승인 상사도(上士道)의 시작이다. 그 후 3아승기 100겁이 지나면 부처가 되어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며 살아간다.
비유하자면, 수학 공부에서 덧셈과 뺄셈을 배우고, 곱하기를 익힌 후, 인수분해를 마스터해야 미적분에 입문할 수 있듯이, 불교수행을 할 때에도 탐욕이나 분노와 같은 거친 감성을 다스려야 좌선을 하고 지혜를 계발하는 고급 수행에 들어갈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세속에 맺힌 한이 모두 풀린 후에야 무한한 생명체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보살의 마음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의 인지(認知)와 감성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티벳불교의 비결은 이러한 단계적 수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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