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광성사
작성일 2013-12-21 (토) 23:19
ㆍ조회: 3799    
선택한 가난은 가난 아니라 행복이고 축복 -청전스님
 
정각원 토요법회 -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의 저자 청전스님

겸손해야 남이 존경스러운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비폭력이다

감사하며 법에 의존하면
난세를 꽃 피울 수 있다

남도 좋고 나도 좋은 기도가
진정한 기도이다

수행은
자기희생이 있어야 한다

예식은 종교문화이며
부처님을 내 주위 어려운 분과
함께 하는 것이다

비 올 때 상대가 우산이 없으면
자신도 우산 없이 걸어가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다…
 
항상 그렇게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27년 넘게 수행한 청전스님은 미소는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한다. 스님의 미소를 보면 남을 즐겁게 하는 웃음 또한 남도 즐겁게 하는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청전스님은 인도 다람살라에서 27년여 간 수행중인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서 1977년 송광사 방장 구산스님을 만나 출가했었다. 티베트 원전 <깨달음에 이르는 길>과 <입보리행론>을 번역했고, 저서로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 등이 있다. 현재 인도 다람살라에서 <한겨레신문> 수행.치유 전문 웹진 벗님글방에 통신원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동국대 정각원과 불교신문이 공동주관하는 2일 ‘정각원 토요법회’에 초대된 청전스님의 법문을 정리했다.

한국의 여러분들이 더 첨단의 것을 잘 알고 있어 여러분에게 법문을 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단상에서 말을 하게 됐다. 인도에 가서 20여 년 동안 많은 이와 대면한다. 몇 해만에 서울에 와 어제 노량진에 처음 갔다. 오가며 또는 쉬면서 ‘이것 드세요. 좋습니다’란 말을 많이 들으며 불편함을 느낀다. 인천공항에 들어오면서 부터 ‘왜 이렇게 깨끗한가’를 느끼며 인도에서의 불편 없는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서울에는 지하철도 많이 변했고, 예쁜 옷이 거리에서 넘쳐난다. 그런 한국을 돌아보면 남에게 보복하고 이익만을 좇는 실상을 보면서 ‘불편한 나라에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불법(佛法)이란 부처님의 연기법이다. 연기적으로 인해 생명이 있는 존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비폭력은 여기서 나온다. ‘남과 나는 같다’는 것에서 비폭력이고, 연기법에서 비폭력 방법으로 살아야 함을 알게 된다. 인생의 길을 걸어오면서 누구나 정말 행복한 것이 연기법이다. 8만4000법문의 요건은 법을 나누는 마음법이다. 마음이 편한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이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신년하례에서 늘 ‘자정기심(自淨其心)’을 말씀한다. 이는 한자에서 잘못 번역된 것 같다. ‘자기 마음을 맑게 한다’는 의미로 번역됐지만, 실상은 ‘자기 마음을 길들인다’는 의미이다. 잘 길들여진 코끼리는 오래 일해도 힘들어 하지 않는다. 마음이 잘 길들여진 분은 어려워도 자기자신을 놓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 유독 화를 잘 낸다. 통상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화는 안내게 된다. 부처님같이 사는 것은 잘 참는 것이다. 스님이나 보살이나 수행의 정도를 아는 척도는 교리보다도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화를 안내면 공부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을 길들이는 사람은 화가 일어날 때 화의 뿌리를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음이 편한 삶은 보이지 않는 인생길을 편안히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길이 없어지고 도로만 생겼다. 새소리, 들녘의 자연 소리가 없는 곳은 길이 아니라 도로이고 인생의 길이 없어 진 것이다. 길은 절대 직선이 아니며, 길은 자연을 살리고 존재한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자기 마음을 길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어릴 적 흔히 듣던 ‘착하게 살라’는 말은, 마음이 맑은 사람, 영혼이 맑은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인도인들은 가난하지만 얼굴에서 짜증스런 모습이 드물다.

달라이 라마 존자의 머리맡 침상에는 난행고행상이 있다. 우리는 부처가 돼 버린 부처만 알지, 부처가 되기 이전의 고행은 놓치고 있다. 인생의 길을 가면서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역시 선택한 불편은 불편이 아니다. 선택한 가난은 정말 필요한 것 이외 소유하지 않는다. 곧 소유가 불편이다. 갖는 것도 선택해서 갖는 것이 재가자 수행에서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 정말 편하다. 그래서 불교의 무소유는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절대 필요한 것만 갖는 것이다.

불교는 몸으로 하는 것이다. 기도를 부탁하는 요즘 풍토를 보면 수행이 빗나갔다. 희생 없는 수행에서 신앙이 없어졌다. 불교에서 성불하게 해달라고 부처가 되지는 않는다. 티베트 불교는 몸으로 한다. 우리가 오체투지라고 하는 것을 티베트에서는 전체투지라고 한다. 부처가 나타났다고 해서 드릴 것이 없어 ‘나를 드린 것‘으로 최대의 존경 표현이 전체투지이다. 간절한 사무침, ‘자정기심’이라는 것으로 ‘자기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 수행이다.

이기적인 기도는 불교가 아니다. 남도 좋고 나도 좋은 기도가 진정한 기도이다.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책에서 상세히 언급했지만, 41살 때 수미산으로 걸으며 많이 느꼈다. 걷는 수행에서 부처님도 뵈었다. 표현을 하기 어려웠다. 차로 성지순례하는 것은 체험이 없어서 진심어린 기도가 안된다. 신앙생활도 진심이 없으면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없다.

순례 이후 달라이 라마 존자를 뵈러 갔을 때 존자의 질문 11가지를 들었다. 달라이 라마는 묻기 전에 이미 ‘너 그랬지’하고 나의 체험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상태, 그 정신이 없으면 달라이 라마의 수행을 못한다. 수행하면서 먹는 것 탓하고 배부르고 따뜻함에 의지하면 수행이 불가능하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선택한 난행고행은 최고의 행복이다. 부처님은 하루 한 끼 식사했고 오후불식이었다. 자기가 선택한 가난이다. 수행은 몸으로 하는 것인데, 백일기도 접수하면서 불교의 현대화가 오히려 타락했다. 너무 쉽게 기도접수하고 축원을 부탁하는 것보다는 간절한 축원을 올리는 것이 기도이고 수행이다.

1993년 성산 카일라스를 도보로 순례할 때 티베트불교도들이 성산 주위를 전체투지를 하며 참배하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카일라스 순례에서 극한 상황을 많이 체험했다. 순례길에 통상 유목민 만나면 잔다. 유목민을 못 만났을 때 하늘을 보고 5일을 자면서 느낌과 체험이 더 왔다. 종교는 체험이다. 관념으로만 불교를 알면 처절한 수행이 안 나온다. 도보순례에서 유목민들이 들려준 진정한 성산순례의 역사에서 나의 도보 순례는 초라해졌다. 몸과 마음의 변화가 있는 것이 성지순례다. 인간은 고행할 때 의식이 산다. 성지순례 일화 중에는 중국에서 티베트까지 외발 즉 발뒤꿈치를 들어올리고 15년간 성지순례 길을 갔던 기록도 있다.

전체투지에서 강이나 물길을 어떻게 건너갈까에 궁금했다. 냇가에서 강폭을 가늠해 그 길이만큼 강가의 거리를 전체투지하고, 다시 돌아와 강을 건너서 전체투지를 이어간다. 수행은 습관이고 업이다. 처음부터 큰 것 잡으면 안된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사천성에서 성산 카일라스를 넘어 다람살라까지 전체투지로 순례하는 길은 대략 4000km이다. 손에 돌멩이를 쥐고 절하고 이를 놓고, 절하고 다시 앞에 쥐고 놓는 전체투지로 순례한 수행자도 있다. 꾄촉 최닥스님이 그렇게 전체투지로 2006년 1월18일 사천성을 출발해 다람살라 왕궁까지 왔을 때가 2009년 10월25일, 3년 9개월 8일만이었다. 스님은 히말라야 설산도 온몸으로 엎드려 절을 하며 넘었지만 문제는 인도의 높은 지열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인도의 여름 폭염은 상상할 수 없는 고행을 줬고, 더구나 인도에서는 티베트 땅과는 달리 음식이나 잠자리를 제공받는 일도 수월치 않았다.

막상 그 스님이 다람살라에 왔을 때 몰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내 방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내 인생 전체를 돌아보고 그간의 나의 수행이 너무 보잘 것 없고 초라함을 다시 생각했다. 그 스님의 모습은 세상의 어떤 이름 있는 린포체나 라마보다 숭고하고 거룩해 보였다. 요즘 한국의 초청을 받고 곳곳을 방문해 법문하는 여느 린포체보다 훨씬 존경스럽다.

몽고는 티베트불교이다. 달라이 라마 3세에 의해 전해졌다. 유목민들이 불교를 택한 것이다. 몽고 스님이 카일라스로 전체투지로 순례 길을 가는 곳에 고비사막이 있다.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무섭다. 절하고 와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도보 성지순례 끝에 출가자로서 걸은 것이 무한하게 부끄러웠다. 수행은 자기희생이 있어야 한다. 희생이 없으니 천불전 만불전만 생긴다. 예식은 종교문화이며, 부처님을 내 주위 어려운 분과 함께 하는 것이다. 오늘 법당 밖에는 비가 온다. 우산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너도 우산이 없으면 나도 우산이 없이 걸어가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다. 항상 그렇게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종교의 스승이 없다. 수행자가 지닌 최고의 재산은 믿고 의지할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스승은 이런 황금 불상이 아니다. 경전을 몇 구절씩 읽는 습관을 붙여야 한다. 불법승 삼보에서 나를 경각시키는 것은 경전이다. 경전은 쉬운 것부터 보면 된다. <법구경> <숫타니파타> <입보리행> 이 세 경론에서 어떤 것을 봐도 나를 경각시킨다. 그것이 스승이고 나의 도반이다.

근래 종단 주변에 신종단어로 ‘노후대처’란 말이 유행이다. ‘노후대책이 안됐다’는 말에 나는 ‘신도 속여서 편히 혼자 먹고 사는 것’이라 말한다. 정확하게 ‘너 한번 굶어봐’ 그것이 노후대책이다. 나의 노후대책은 청정하게 살고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가진 것은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론 번뇌다.

수행에서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 행복이고 축복이다. 스승은 없어도 법이 있기에 법을 믿고, 법을 알아차리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한다. 겸손해야 남이 존경스러운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비폭력이다. 감사하며 법에 의존하면 난세를 꽃 피울 수 있다. 꿈에서라도 불보살을 보는 것은 잠자리에 들 때 베개를 베고 마음의 부처님을 베개에 형상화해 의식을 놓치지 말고 자는 습관을 두는 수행법이다. 좋아하는 부처님을 베개 삼아서 수행을 놓치지 말자.

[불교신문2961호/2013년11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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